언론보도 및 활동

media report

2019.11.15. [네이버 법률N미디어] "애들 싸움에 변호사가 왜 나와"…'학폭 1호' 전문변호사가 말하는 학교폭력 없애는 법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3-27 07:29
조회
2265

 

지난 9월 무릎을 꿇고 있는 피투성이의 여학생 영상이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습니다. 일명 '수원역 노래방 집단폭행' 사건입니다. 잔혹한 영상이 온라인으로 삽시간에 퍼지자 이들을 엄벌해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하루 만에 20만명을 넘었습니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만 14세 이하로 촉법소년입니다. 촉법소년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학교폭력 사건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때마다 피해자들은 울분을 삼킬 수밖에 없는데요.

 

 

학교폭력 전문변호사 국내 1호인 노윤호 변호사는 이 같은 학교폭력 장면들을 하루 9건 이상 상담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노 변호사는 우연한 기회에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 참여했다가 생각보다 많은 학부모들의 상담을 듣고 아예 이 길로 들어서기로 했습니다.

 

 

법률가 입장에서 노 변호사가 본 학교폭력의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요?

 

 

- 직접 현장에서 바라본 학교폭력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우선 어떤 폭력이든 사이버폭력이 함께 이뤄진다는 점이 특징 같아요. 아이들이 사용하는 메신저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 따돌리거나 폭행하는 장면을 촬영해 공유하는 범죄가 거의 대부분 동반됩니다.

 

 

또 하나는 정말 가까이서 세심하게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교묘하게 이뤄집니다. 예를 들면 ‘저격글’ 같은 건데요. 저격 당한 당사자는 본인이 피해자란 사실을 잘 알죠. 가해자와 주변 친구들도 알아요. 하지만 제3자가 보면, 특히 어른들이 보면 좀 애매해요. 이렇게 교묘하게 드러나지 않도록 이뤄지는 사이버폭력도 학교폭력의 특징입니다.

 

 

- 학교폭력 사건이 알려질 때마다 소년법을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큰데요.

 

 

▲개인적으로는 학교폭력의 처벌 수위를 조금 높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년사건 통계를 보면 신고 후 기소되지 않고 불기소로 끝나는 경우가 무려 53%에 달해요. 전체 사건 중 형사재판까지 가는 경우는 단 5% 정도고요. 이마저 집행유예로 끝납니다. 학교폭력 100건 중 실형은 1~2건에 불과한데 국민정서에 맞출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제가 학교폭력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더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는 따로 있어요. 바로 절차와 과정의 문제에요.

 

 

가해자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비공개가 너무 많습니다. 재판에 피해자가 참여할 수도 없어요. 피해자도 가해자에 대한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권리가 있잖아요. 피해자의 목소리가 재판부에 잘 전달되지 않고 있습니다.

 

 

- 가해자 처벌보다 피해자 입장이 중요하단 말씀인가요?

 

 

▲맞아요. 소년사건 재판은 가해자와 가해자 부모 정도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피해자 측 목소리가 많이 반영되고, 피해자 측의 목소리를 많이 반영해주면 감정적으로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것들이 이뤄지지 않다보니 어린 친구들을 형사처벌 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거죠. 가해자 처벌도 중요하지만 피해자 보호가 더 우선입니다.

 

 

- 학교폭력 사건의 절차나 과정에 또 어떤 문제가 있나요?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일부 학교들의 문제도 심각합니다. 또 교사의 역량에 따라 해결이 잘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고요.

 

 

가해학생의 행위가 "이래서 학교폭력이다"라고 가해학생에게 명확하게 알려줘야 하잖아요. 이런 것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가해학생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왜 가해학생인지조차 모릅니다. 학교폭력 사건에서 가해자의 어떤 행위가 범죄이고, 가해자 측이 어떻게 사과하고 반성해야 하는지 제가 도움을 주는 거죠.

 

 

- 직접 현장에서 바라보니 학교폭력의 가장 어려운 문제가 뭔가요?

 

 

▲학교 폭력을 축소하거나 은폐하려는 학교를 접할 때요. 특히 고등학교는 입시에 예민하다보니 학교폭력을 축소 은폐하려는 경향이 짙어요. 가장 다루기 힘든 것들이 여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따돌림이예요. 피해자는 정말 어렵게 마음 먹고 신고했는데 학교 측에서는 “이 정도는 학교폭력이 아니다”라며 학폭위조차 열지 않죠.

 

 

학교마다 특성과 분위기가 다르다보니 이런 문제들이 너무 많아요. 비슷한 유형의 학교폭력 사건이라도 어떤 학교에선 학폭위가 열리고, 다른 학교에선 열리지 않죠. 이런 문제가 많다보니 내년 3월부턴 해당 지방교육지원청에서 학교폭력심의위원회가 열리는데요. 이마저도 형식적으로 흘러갈까 걱정스럽습니다.

 

 

- 학교폭력을 막으려면 당장 뭐부터 해야 하나요?

 

 

▲미국이나 유럽, 일본 같은 선진국에선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일단 가해자를 격리시켜요. 곧바로 가해자에게 출석정지를 시키죠. 피해 학생을 보호하기 위한 겁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긴급조치로 출석정지가 가능하긴 한데요. 하지만 가해학생 측 학부모들이 워낙 거세게 반발하니까요. 그러다보니 학폭위가 열릴 때까지 가해학생 격리는 이뤄지기 힘듭니다. 그동안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은 같은 교실에서 계속 지낼 수밖에 없고요. 결국 한국에선 되레 피해학생이 학교에 나오지 않죠.

 

 

- 가장 기억에 남는 학교폭력 사건이 있나요?

 

 

▲한 장애학생이 있었는데 두 친구가 이 학생을 괴롭혔어요. 그런데 장애학생 부모님이 하지 말라고 크게 소리치라고 알려주셨나봐요. 그래서 두 친구가 때리면 하지말라고 소리를 질렀죠. 그러자 두 친구가 CCTV가 없는 화장실에 데려가서 이 장애학생을 무차별 폭행한 거예요. 당시에 20여명 정도의 학생들이 구타장면을 그대로 지켜봤다고 하네요.

 

 

결국 피해자 측에선 고소를 했는데요. 가해자 측 부모가 상해로 맞고소를 해버렸어요. 피해학생이 맞다가 주먹을 막으려고 가해학생 손목을 잡았는데 손목에 긁힌 자국이 상해라는 거예요. 학폭위가 열리려면 또 시간이 걸리죠. 더구나 20여명의 친구들이 이 장면을 지켜봤는데 아무도 증언을 해주지 않았어요. 학폭위에서는 진술이 상반된다고 피해학생을 보호해주지 않았고, 결국 피해학생이 전학을 가는 걸로 끝났어요.

 

 

그러다 뒤늦게 당시 폭행 장면을 지켜본 친구들 중 1명이 용기를 내서 증언을 해줬죠. 다들 가해학생의 보복이 두려워 말을 못한 건데요. 이 증언이 수사단계에서 모두 인정돼 재판까지 갔습니다. 이 1명의 친구가 없었다면 무혐의로 끝날 사건이었어요.

 

 

- 목격자가 있다고 해도 실제 증언을 얻기란 쉽지 않나보네요?

 

 

▲학교폭력은 부모님의 역할이 정말 중요해요. 학교 폭력이 진행되면 부모님들이 아예 증언을 하거나 진술하지 말라고 하신데요. 괜히 사건에 연루되면 골치만 아프다고요. 그럴 시간 있으면 공부나 하라는 식으로 부모님들이 학교폭력을 방관하도록 시키는 거죠.

 

 

- 학교사건에 변호사가 끼어들면 주변반응은 어떤가요?

 

 

▲여전히 생소해하고 부정적인 시각도 있어요. “무슨 애들 싸움에 변호사가 끼어드냐”는 말까지 들어봤어요. 그런데 이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애들 싸움”이라고 보니까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거죠. 학교폭력을 이렇게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학교 폭력도 엄중한 사회문제예요. 그래서 더 무게감을 주고 싶고, 대한변협에 전문분야 신설을 추진해온 이유죠.

 

 

- 아이들끼리 스스로 학교폭력을 막는 방법은 없나요?

 

 

▲네, 가장 좋은 학교폭력 예방은 교실 안에서 학교 폭력을 허락하지 않는 분위기를 강하게 만드는 거예요. 제가 이런 사례를 봤어요. 어떤 친구가 한 친구를 제외하고 교실 카톡방을 새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 방에 없는 친구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죠.

 

 

이때 다른 친구가 “너 지금 이거 집단 따돌림이고 폭력행위야”라고 말하면서 초대되지 않은 친구를 다시 방에 초대했대요. 친구들끼리 이렇게 견제를 해주니까 학교폭력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어요.

 

 

저는 부모님들이 이렇게 학교폭력의 목격자가 되라는 가르침을 아이들에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학교폭력 예방은 내 아이도 언젠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감에서 출발합니다.

 

 

아이들끼리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알고, 서로 견제하도록 해준다면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