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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20. [조선일보] '호랑이 학생주임' 은 옛말, 아무도 안 나선다.- 노윤호 변호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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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21-03-1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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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

 

‘내년에는 생활지도부장 하지 않겠습니다.’

서울 광진구의 한 중학교 50대 교사의 카카오톡 프로필에 적혀 있는 문구다. 그는 학교 폭력 업무를 전담하는 생활지도부장 교사였는데, 한 해 더 보직을 맡길까 봐 3개월간 이 같은 ‘프로필 시위’를 했다. 이 학교 박모(59) 교감은 “매년 생활지도부장과 생활지도부 교사를 뽑을 때마다 미안하고 답답해 잠을 통 못 이룬다”고 말했다.

다음 달 초·중·고 개학을 앞두고 보직 교사 선임을 마무리하는 시기를 맞아, 각 학교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과거 ‘호랑이 선생’으로 불렸던 학생주임(현 생활지도부장) 선정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이모(32) 교사는 “강남에선 아이들 싸움이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해결이 더 어려운 편”이라며 “아무리 인사 고과 가점을 준다고 해도 강제 지목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안 맡으려는 분위기”라고 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 박모(60) 교감은 ‘생활지도부 소속 교사를 마음대로 지명할 권한을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어 간신히 한 교사에게 생활지도부장을 맡겼다. 각 학교 교장·교감들은 “학교 폭력 담당자 한번 뽑으려면 교사들에게 읍소도 하고, 결국 안 되면 해당 경력이 있는 다른 학교 교사를 모셔오거나 한 학기씩 나눠 ‘생활지도부장 할부제’를 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생활지도부장 맡기를 꺼리는 이유는 학교 폭력이 점차 더 교묘하게 진화(進化)해 관리가 쉽지 않은 데다,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학부모가 격렬한 항의를 넘어 소송으로까지 위협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3년간 생활지도부장을 맡았던 중학교 교사 김모(41)씨는 작년 한 가해 학생 부모가 아동 학대 혐의로 고소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 고소장 분량만 400장이 넘었다. 그는 고소 대응을 위해 동료 교사들의 탄원서를 받고, 폐쇄회로(CC)TV 자료 등을 쇼핑백 한가득 준비해 수개월 동안 경찰서를 들락거려야 했다. 김씨는 “가해 학생의 부모가 자녀의 행위를 없던 일로 만들기 위해 변호사를 동원해 학교를 경찰에 고소하거나 인권위에 제소하는 경우도 많다”며 “생활지도 담당 교사 중에는 공황장애로 약물 치료를 받거나 견디다 못해 휴직한 사람들도 허다하다”고 했다.

8년간 생활지도부장을 했던 서울 한 중학교 교사 곽모(58)씨는 “반 친구들이 자신만 따돌린 채 뒷담화를 한다고 주장한 한 여학생의 아버지는 30통 넘는 ‘문자 폭탄’을 보내고, 아예 한 달간 휴직을 하고 새벽 5시부터 학교 앞에서 나를 기다리기도 했었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해당 학생의 피해망상이었다”고 했다. 생활지도부장 등 학교 폭력 담당 업무를 하는 교사 1400여 명은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서로의 고충을 토로하며 조언을 주고받는다. 대화방에는 “내가 교사인지, 수사관인지, 악성 민원인을 응대하는 상담원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종종 올라온다.

학생 간 폭력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교사들이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공격받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다 보니 보험 상품까지 등장했다. 교권 침해 피해 등을 보상하는 하나손해보험의 교직원 안심보험엔 2018년 3863명, 2019년 3356명, 작년 2317명이 가입했다. 하나손해보험 관계자는 “작년엔 등교 중단으로 교직원 상대의 영업이 줄었던 영향이 있지만 꾸준히 교사들이 가입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생활지도 교사들의 고충이 계속되자 교육부는 작년 3월부터 각 학교에 설치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폐지하고, 각 교육지원청에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만들어 학교 폭력 사건을 조치하고 있다. 그러나 폭력 사건 조사가 여전히 일선 학교에서 먼저 이뤄지고 있고, 최근 비대면 수업으로 과거에 없었던 ‘학교 밖’ 신종 폭력 사건이 늘어 사건 처리가 더 까다로워졌다고 교사들은 입을 모은다. 서울 강동구의 한 초등학교 이모(27) 교사는 “놀이터나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이뤄지는 ‘학교 밖’ 폭력은 교사가 이를 직접 보지 못하다보니 해결이 더 어렵다”고 했다.

학교 폭력 사건 전문인 법무법인 사월의 노윤호 변호사는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면서 나체 영상에 친구들의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Deepfake) 영상을 만들거나, 친구들 카카오톡 계정을 빼앗아 도박 사이트에 팔아넘기는 등 과거에 없던 유형도 생겨났다”고 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체 학교 폭력 중 사이버 폭력의 비율은 2018년 8.7%, 2019년 8.9%에서 작년 12.3%로 증가했다.

교사들이 생활지도 교사 맡기를 꺼리는 바람에 계약직으로 일하는 기간제 교사가 학교 폭력 담당 업무를 떠안는 경우도 많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무부장인 최모(53) 교사는 “기간제 교사를 선발할 때 학교 폭력이나 생활 지도 업무를 했던 경력이 있으면 가산점을 줘서 꼭 뽑는다”고 했다. 전국 기간제 교사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도 “학교 폭력 업무를 맡으면 한 학교에 오래 있을 수 있다” “정신적으로 힘들어도 경력에 도움이 된다”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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